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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북스

심신단련, 이슬아 : 자신의 삶을 문장으로 보관할 줄 아는 사람

by 알로네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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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단련

이슬아

 

다 썼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포스트잇 플래그의 한 색깔을 모두 쓰고 말았다. 책을 들어 옆면을 살펴보니 붙여놓은 필름들이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빼곡하게 삐져나와있다. 이슬아의 <심신단련>은 그저 감탄만 하며 넘길 수 없는 문장들이 많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거나 필사하고 싶은 부분, 재차 감동하고 싶은 부분이 한 뭉텅이었다. 그런 매력적인 대목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또 읽고 싶다는 생각. 이런 호들갑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순식간에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근데 막상 완독하니 대뜸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대체 그녀의 문장이 왜 이토록 좋은 걸까. 단순히 글을 잘 빚는 재능 때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이슬아라는 인물 자체에 반한 기분. 그녀가 품고 있는 질문과, 시선, 태도가 우아해서 감격한 기분이었다.

거의 모든 글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수필은 따로 필사해 저장해뒀다. 필사의 본래 목적은 잘 쓴 글의 구조를 익히는 것이지만 나는 자꾸 이점을 망각하고 문장에 반해서 기록하게 된다. <심신 단련>은 특히 더 홀려서 썼다.

<새 마음으로> → <아무튼 노래> → <심신단련>까지. 그녀의 작품을 읽은 순서다. 이슬아라는 이름을 알린 대표작은 <일간 이슬아>인데 정작 그건 못 읽었다니. 어째 거꾸로 감상하고 있는 듯하지만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이런 예감이 든다. 머지않아 그녀의 전작을 읽을 것이고, 아마 충동적으로 전작을 구매할지도 모르겠다고.

아빠가 직접 만든 책상에 앉아 고된 쓰기 노동을 실행하는 작가. 그녀가 고심해 꺼내놓은 이야기들을 나는 오늘도 파자마 차림으로 흡수했다. 반듯한 자세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삼십 대 여자와 침대에 벌러덩 누워 감탄하며 책을 읽는 삼십 대 여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글을 대하는 자세는 이렇게나 다르다. 나의 위치를 알게 되자 함부로 그녀의 재능을 선망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그녀가 지은 문장들을 읽다 보면 자꾸 쓰고 싶어진다. 그녀처럼 잘 쓰고 싶어서라기보단 그녀처럼 자신의 삶을 문장으로 보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 과정은 고독하고, 지루하고, 때때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생생하게 사는 방법일 것이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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