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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북스

창작과 농담, 이슬아

by 알로네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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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창작과 농담

이슬아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니 제목의 탄생 배경이 얼추 이해가 간다. 왜 굳이 '농담'이라는 단어를 끼어 넣었을까 의아했다. 창작과 딱히 조화를 이루는 단어가 아님에도 굳이 '농담'을 뒤에 붙인 이유.

이에 대한 힌트는 책의 후반부, 김초희 감독님의 대화문에서 발견했다. 이슬아 작가는 농담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두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세상 속에 있다가도 잠깐 세상 바깥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근처를 거닐며 그것의 옆모습과 뒤꽁무니를 보는 능력이다. "

그 표현을 빌려보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에 대해 농담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래 생산할 수 있는 창작자란 생각이 들었다. 필연적으로 자신을 다그칠 수밖에 없는 창조의 과정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한 발자국 나와 멀어지는 게 필요할 테니 말이다. 결국, 농담은 창작에 필요한 자질인 셈이다.

이 책에는 그 자질을 충분히 갖춘 6명의 인물이 나온다. 황소윤, 김규진, 장기하, 강말금, 김초희, 그리고 오혁까지. 자신과 거리를 두고 멋지고, 슬프고, 좋은 것을 만들어낸 그들과 이슬아 작가는 대화를 나눈다. 어쩌다 그런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운을 떼면서.

그 대화를 말끔히 정돈해 400페이지에 담아냈으면서 저자는 에필로그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인터뷰는 결코 누군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일 수 없다. "

그리고 뒤이어 덧붙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어로서 일한다. 정성스레 시간을 들여 물어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과 그가 실제로 했던 말을 옮겨 적다가 비로소 해석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느린 호흡으로 읽게 된다.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작자가 보낸 숱한 시간을 단번에 이해하려 한다는 건 어딘가 건방져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담긴 6명의 예술가도,

그들의 삶을 글로 표현한 작가도

모두 멋져서 무대를 올려다보듯 읽은 책.

 

* 인상 깊은 문장들

1. 황소윤 X 이슬아

 
 

2. 김규진 X 이슬아

 
 
 
 
 
  강남 입성과 회사 오너를 꿈꾸는 야심찬 레즈비언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말끔한 사람에게는 소수자의 옷을 입혀놔도 태가 난다는 걸 김규진 님을 통해 알았다. 기득권을 추구하는 유복한 레즈비언. 빈자(貧者)의 영역에 있는 나의 응원 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그녀는 원하는 걸 쟁취하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3. 장기하 X 이슬아

 
 
 
 
 
 
 
뚱보이자 울보인 (심성 여린) 남아가 이렇게 엉뚱한 사내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제법 지난 과거이긴 하지만 나 또한 그의 음악을 즐겨들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음악이 좋았던 이유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기존 음악과 달라서'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여유로움'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군더더기 없는 삶을 지향해서일까. 그에겐 조급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담백하고 의연하다. 나에게 없는 자질이라 그게 빛나 보였던 것 같다.

 

4. 강말금 X 이슬아 X 김초희

 
 
 
 
 
씩씩한 두 여성의 창작 이야기. 흥미롭게 읽다가 문득 말미에서 거대한 동질감을 느꼈다. 김초희 감독은 말했다. 자신이 바라는 부귀영화는 '마음에 거슬림이 없는 상태'라고. 여기서 무릎을 칠 뻔했다. 나 또한 거의 평생 바라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내면이 시끄러운 사람에겐 심적 평화의 순간이 찰나라 더 소중하다고 한 것도 매우 공감이 갔다.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내 고개도 끄덕여진 문장.

5. 오혁 X 이슬아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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