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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북스

새 마음으로, 이슬아 : 일이 곧 삶이 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by 알로네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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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이슬아


 

<새 마음으로> 평이한 제목이 아니라 부제에 끌려 선택한 책이었다.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모든 대화를 읽은 후 다시 5음절의 제목을 천천히 읽어본다. 새/마/음/으/로

이 책의 의미를 축약해서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등장하는 일곱 명의 인물이 수십 년간 같은 일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새 마음'으로 하루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이 곧 삶이 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저자인 이슬아 님은 말한다.

"나는 인터뷰어로 일할 때 그나마 공부하는 사람이 된다.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게으르게 배웠을 것이다. "

이 표현을 차용해 감상평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그나마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 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 세계에 갇혀 앞만 보며 걸어갔을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들>

1.

보통 소장이 교육을 해요. 같은 동료끼리 잔소리를 하면 기분이 나쁘니까요. 동료가 대충 치워놨어도 내가 말없이 더 치워야 하죠. 동료한테 함부로 잔소리를 하면 안 돼요. 만약에 나 때문에 동료가 삐져가지고 그만둬 버리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사람 구하기 힘든데요. 그냥 내가 좀 더 치우는 게 낫지요.

이슬아 : 왜 박스 위에 앉아계세요?

이순덕 : 휴게실에 의자가 없응께.

이슬아 : 휴게실에 의자가 없구나. 몰랐어요.

이순덕 : 그렇기도 하고 응급실이 너무 바쁘니까 지하에서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계단 오르내리는 게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냥 가까운 바닥에 앉아서 대기하는 거예요.

담담한 것은 없지요. 맨날 봐도 깜짝깜짝 놀라요. (...) 교통사고 난 환자가 오면 제일 힘들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놔서 그걸 말로 다 못해요. 급한 환자가 오면 의사 선생님들이 살리려고 막 하잖아요. 피가 코로 입으로 막 나와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면서 주변은 엉망이 되지요. 그럴 때면 많이 힘들죠.

이슬아 : 다 치우고 난 다음에 그 자리를 돌아보시나요?

이순덕 : 돌아보죠. 내가 치운 데를 한번 이렇게 둘러보는 거예요. 말끔하게 싹싹 치운 걸 보면 기분이 좋지요. 저는 일하면서 실수 잘 안 해요. 의사 선생님들은 기술이 어려우니까 실수할 때가 있을지 몰라도 나는 청소 일이니까 완벽하게 해요. 남의 자리에서는 일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그저 내가 맡은 일만은 완벽하게 하는 거예요.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 딱 49페이지. 오십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에서 어떤 무게가 느껴진다. 부끄러움의 무게다. 살면서 병원 청소 노동자를 떠올린 일이 손에 꼽는다. 쓰레기통은커녕 먼지 한 톨 허용치 않는 병원의 말끔함 뒤에 누군가의 노동이 숨어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문장에 굵게 밑줄을 긋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가 직접 하지 않은 일로도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꺼려 하는 일을 꼼꼼히 성실하게 해내고 있을, 만나보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며 (...)"

27년을 한자리에서 일하신 분의 삶을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아름다운 건 소란스럽지 않음을.

2.

나는 왜 늘 '엄마'라는 말의 반대인 것처럼 그 끝에 내가 생각하는 멋진 여성,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을 두었던 걸까?

그토록 겁 많고 걱정 많은 여자가 나를 어떻게 그 먼 곳으로 보낼 수 있었는지. 그건 엄마가 단 한 번도 내 가능성을 제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나는 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내가 물려받은 건 겁뿐만 아니라 그 겁을 이겨내는 용기이기도 하다고. (ㅡ김신지. 평이로 인생이니까)

윤인숙 :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으로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이슬아 : 새 마음...

윤인숙 : 식물한테도 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돈이라 생각하고 일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키우는 거지. 키우는 과정도 솔직히 예뻐. 키우는 중에 내가 만약 '키워도 야가 돈이 안 되면 어카지'하면 갸갸 잘 자라겠어? 크는 단계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똑같아요. 모든 것을 사랑으로, 사랑으로 키워야 돼. 스트레스도 잠깐만 받고 금세 잊어버리고 자꾸 새 출발 해야 해.

농업인 윤인숙

→ 슬픈 단어도 없고, 센치한 밤도 아니었는데 읽는 내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 감정을 슬픔이라 여기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에 가까웠다.

주책맞지만 자꾸 누군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멀지 않는 거리에서 오늘도 내 안위를 걱정했던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따라잡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엄마의 사랑은 매일 새롭게 거대해져서 사랑의 크기로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것 같다.

3.

장병찬 : 지금도 큰 욕심이 없어. 입에 풀칠할 수 있고 마음 편하면 그걸로 됐다 싶어. 할머니하고의 세월을 돌아보면 정말 잘했다고 느껴. 요즘에는 그저께 만난 사람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오래된 일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 이상햐. 미안한 일들도 한스러운 일들도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데, 그런데도 나한테 삶이라는 게 참 풍족한 것 같아.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 그저께 만난 사람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오래된 일은 선명하다는 병찬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무친 과거는 몸에 자국을 남기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가난으로 인해 고단한 시간을 보낸 자에게는 쓰린 흉터가 남지만, 삶에 대한 감사함도 선명해지는 것 같다.

4.

이슬아 : 인쇄소에는 특별히 인기 있는 기장님들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분들은 어떤 노하우를 가졌기에 인기가 많으실까요?

김경연 : 기본적인 것들은 모든 기장이 공통적으로 배우지만 그 외의 것들은 본인이 직접 습득해나가야 해요. (...) 저는 별색을 잘 찍기 위한 노트를 따로 만들었어요. 직접 다 수기로 쓴 거죠. (...) 그렇게 꽉 채운 노트가 다섯 권이에요. 어떻게 보면 컬러 차트보다 더 정확해요.

이슬아 : 엄청 보물 같은 노트네요.

김경연 : 또 중요한 게 있어요. 기장은 기계를 고칠 줄 알아야 해요. 웬만한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하죠. 저는 인쇄도 재밌었지만 기계 고치는 게 또 참 재밌어요. 지금도 기계를 웬만하면 제가 다 고쳐요.

인쇄소 기장 김경연

→ 일을 잘 하기 위해 자신만의 기록 노트를 5권 지니고 있는 사람, 업무 환경이 시끄러워 항공용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 쉬는 날 아내랑 노는 게 즐거운 사람,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는 사람,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랑의 표현을 찾아다니는 사람.

인쇄소에서 일하는 김경연 님의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재미'였다. 참고 버텨야만 하는 노동이 아니라 '재밌어서 더 잘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게 된 대화였다.

5.

인쇄소의 직원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작가의 몫이 얼마나 일부인지를 알게 된다. 쓰고 그리는 사람만으로는 책이 완성될 수 없다. 책뿐만 아니라 모든 크고 작은 물건들이 그렇다. 숫자로 이루어진 약속을 살피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사이사이에 있다.

(...) 앞으로도 따뜻한 존중 속에서 그분들과 협업하고 싶다.

김혜옥 : 책 나오는 과정이 제 눈에는 너무 예뻐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게 참 좋죠. 그리고 저희 인쇄소에서 직접 만든 새 책을, 제 사무실 책상에 한 권씩 꽂을 때마다 기분이 되게 좋아요. 일은 자존감이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회계뿐 아니라 다른 업무로 제 영역을 더 확장하고 있는데 솔직히 좀 자랑스러워요. 제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그 느낌이 좋죠. 계속해서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쇄소 경리 김혜옥

→ '예쁘다' 자신의 업무 환경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10년을 일한 나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단어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면 나의 쓸모를 증명한 것 같아 뿌듯하다는 그녀. 밝은 표정 안에 그 진심이 담겨 있는 듯해서 마음이 참 편해지는 인터뷰였다.

6.

이슬아 : 일요일마다 성당에 다니시죠? 어떤 기도하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이영애 : 주로 내 욕심인 기도를 하지. 우리 아들딸들 위한 기도 올리고, 우리나라가 편하라고 기도하고. 근데 가만 보니까 내 건강을 위한 기도는 한 적이 없더라고. 요즘엔 내 건강도 빌어. 그래야 자식들이 안 힘들잖아. 내가 아파가지고 드러누우면 안 되지.

이영애 : (...) 가끔은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내 삶이 필름처럼 돌아가.

이슬아 : 주마등처럼요?

이영애 : 응.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촤악 스쳐 가는 거야. 젊었을 땐 남편이랑 바람피우고 살림 차린 젊은 여자도 참 미워했고, 우리 시어머니도 미워했어. 이제는 아무도 밉지가 않아.

이슬아 : 왜 안미 우세요?

이영애 : 몰라. 어느새 이해가 돼. 안 미워. 그 여자들도 안쓰러워.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닐 거야. 그 사람들 삶도 기가 막혀. 그래서 안 밉더라고.

수선집 사장 이영애

→ 본인의 건강에 대한 기도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 힘들까 봐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를 느낀다.

오랫동안 타인을 배려하며 산 사람들에게는 미움이 잘 머물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남들의 옷을 수선하면서 길게 늘어진 미움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다림질했던 게 아닐까.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도 밉지 않다고 말하는 영애 씨에게서 잘 수선된 평온이 보였다.

 

7.

세월을 더디게도 만들고 쏜살같이 흐르게도 만들었을 노동에 관해 다뤘다. 그 노동에 임하는 일곱 명의 어른들.

나는 인터뷰어로 일할 때 그나마 공부하는 사람이 된다.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게으르게 배웠을 것이다.

오래되어도 생기를 잃지 않는 장소들이 있다. 그곳은 날마다 자기 자신과 일과 도구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존재 씨의 천장 속 그릇이나 영애 씨의 실뭉치나 혜옥 씨의 서류함이나 경연 씨의 인쇄기나 순덕 씨의 유니폼에서도 비슷한 생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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