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농담
이슬아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니 제목의 탄생 배경이 얼추 이해가 간다. 왜 굳이 '농담'이라는 단어를 끼어 넣었을까 의아했다. 창작과 딱히 조화를 이루는 단어가 아님에도 굳이 '농담'을 뒤에 붙인 이유.
이에 대한 힌트는 책의 후반부, 김초희 감독님의 대화문에서 발견했다. 이슬아 작가는 농담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두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세상 속에 있다가도 잠깐 세상 바깥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근처를 거닐며 그것의 옆모습과 뒤꽁무니를 보는 능력이다. "
그 표현을 빌려보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에 대해 농담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래 생산할 수 있는 창작자란 생각이 들었다. 필연적으로 자신을 다그칠 수밖에 없는 창조의 과정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한 발자국 나와 멀어지는 게 필요할 테니 말이다. 결국, 농담은 창작에 필요한 자질인 셈이다.
이 책에는 그 자질을 충분히 갖춘 6명의 인물이 나온다. 황소윤, 김규진, 장기하, 강말금, 김초희, 그리고 오혁까지. 자신과 거리를 두고 멋지고, 슬프고, 좋은 것을 만들어낸 그들과 이슬아 작가는 대화를 나눈다. 어쩌다 그런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운을 떼면서.
그 대화를 말끔히 정돈해 400페이지에 담아냈으면서 저자는 에필로그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인터뷰는 결코 누군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일 수 없다. "
그리고 뒤이어 덧붙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어로서 일한다. 정성스레 시간을 들여 물어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과 그가 실제로 했던 말을 옮겨 적다가 비로소 해석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느린 호흡으로 읽게 된다.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작자가 보낸 숱한 시간을 단번에 이해하려 한다는 건 어딘가 건방져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담긴 6명의 예술가도,
그들의 삶을 글로 표현한 작가도
모두 멋져서 무대를 올려다보듯 읽은 책.
* 인상 깊은 문장들
1. 황소윤 X 이슬아
2. 김규진 X 이슬아
3. 장기하 X 이슬아
4. 강말금 X 이슬아 X 김초희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내 고개도 끄덕여진 문장.
5. 오혁 X 이슬아
에필로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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